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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별 1회 소식지 발간, 월 1회 뉴스레터 발송을 통해 다시서기센터의 다양한 활동을 전해드립니다.

다시서기 뉴스레터 2021년 4월호

뉴스레터
작성자
다시서기
작성일
2021-05-18 10:02
조회
132
     Vol.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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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
쌀쌀한 날씨를 몰아내고 따뜻한 봄바람이 느껴집니다. 15년동안 거리노숙인의 발이 되었던 오랜 기관 차량을 떠나보냈습니다. 입사 후 약 5년동안 서울역 현장에서 닦았던 활동가들이 서울역 현장을 떠나 종합지원센터에서 새업무도 시작하였습니다. 
4월은 변화의 계절입니다. 이제 곧 노숙 복지 현장에 코로나 백신 접종도 시작합니다. 움추렸던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어서 빨리 변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노숙인과 다시서기를 응원해주시는 후원자님과 자원봉사자관계자님들의 관심과 후원을 느끼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4월에도 응원 부탁드립니다.  
                               😃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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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성프란시스대학 16기 수료식이 있었습니다그 즈음 수료를 앞둔 16기 손종식님에게도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지난 1년 인문학 공부 뿐 아니라 마명철 학무국장님과 36년간 사망신고자로 신고되어 있던 신분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계셨는데 최종적으로 사망사유 말소‘ 통보를 받고 신분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오마이뉴스 (강민수 기자)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손종식님의 인생이야기를  한번 더 나누고자 본소식지에 요약해서 담았습니다. 자세한 기사는 https://bit.ly/3dwyU0s 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 많다. 건강보험, 통장개설, 자격증 취득, 근로계약서 작성, 기초생활수급 신청. 이런 건 둘째치고 남들 다 만드는 핸드폰도 가져본 일이 없다.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을 못 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지금껏 한 번도 투표를 해보지 못한 일이다.

"제일 뭐시기 하는 게 투표하는 거남들은 하찮게 생각하는 거 
그런 걸 못 하고 사니까는 참 그때는 서글펐었어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고."
 
 손종식(61)님은 지난 36년간 사망신고된 사람이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내기 위해, 작년 3월, 성프란시스대학에 지원했다. 서울역에 온 지 15년만에 세운 그 결심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번에야 말로 사망신고된 자기 자신을 살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입학했다. 이미 혼자서 수차례 시도를 했지만, 복잡한 절차와 길어지는 기간 앞에서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번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과거
 손종식님의 고향은 전라남도 구례였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일을 하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일하셨고 4남매를 키우기엔 가정형편이 벅찼다. 장남이었던 손종식님은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그는 '중국집 배달 보이'가 됐다. 그가 20살이 됐을 때, 함께 일하던 형이 잘 아는 중국집이 있으니 광주로 내려가자고 했다. 1979년 10월이었다. 그때쯤 부산과 마산에서 '시끄러운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7개월이 지났다. 1980년 5월이었다. 5월 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5월 18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공수부대가 내려오고 나서 상황이 급변했다.  그는 '목격자'가 되었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가족한테 연락할 경황이 없었고 내 몸 살려고 막 피해 지냈다’.  어머니가 사망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손종식님이 알게 된 건 그러고도 10년 후의 일이다. 처음엔 경황이 없었고, 나중엔 신체검사를 받지 못해 병역기피자로 잡혀갈까 봐 겁이 났다. 헌병들한테 끌려가면 반 죽어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자꾸 광주 생각이 났다.
달리 할 줄 아는 일도 없었기에 30년간 성실히 중국집 일만 하며 나중엔 주방장까지 되어 8~9년을 일했다. 주방장이 되자 전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여전히 일은 고됐다. 주말 없이 한 달에 한두 번을 쉬었다. 매일 밤 10시 반이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남 모르는 상처와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고, 통장이 없어 저축을 못 하니 돈이 모이질 않았다. 결혼도 꿈꿀 수 없었다. 사망신고가 되어 있는 현실이 점점 그의 삶을 옥죄어 왔다. 결국 주방장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던 차에 그는 경마를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잃었다. IMF 사태 이후로는 중국집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일을 다시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의 나이 벌써 사십대 후반이었다.
 '죽어 있는' 사람이니 다른 자격증을 딸 수도 없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영등포 OB공원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 신분증으로 일용직 일을 나가면 한 일주일은 여인숙에서 지냈다. 1년 6개월이 지났고, 그게 한계였다. 몸은 급속도로 안 좋아져 결핵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다시 서기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는 노숙도 어려워진 몸으로  다시서기센터에 왔다. 다시서기센터에 있으면서 성프란시스 대학에 입학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1년이 좀 넘는 시간 끝에 사망신고정정을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이 입학을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누군가가 '해냈다'는 사실이 그에게 와 용기가 됐다손종식님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용기를 냈으면 하고 바란다그게 부담스러울 수 있을 인터뷰를 선뜻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성프란시스대학의 학무국장과 자원활동가들이 본 손종식님은 '잘 웃어서 주위까지 환하게 만드는 사람',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을 안 하는 사람', '의지가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한때 술과 경마에 빠져서 돈을 잃었지만, 30년 동안을 한 달에 한두 번 쉬어가며 중국집 일을 했고, 성실함을 인정받아 배달 보이에서 주방보조로, 결국 주방장까지 됐다.
입학 후 1학기 동안 그는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성프란시스대학의 학무국장과 진행한 사망신고 복원과정은 첫 단추부터 쉽지 않았다. 매순간 위기에 봉착했다. 스트레스로 정신과 증상이 나타나 결국 1달 반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망신고 정정기

"첫 번째가본인임을 확인해야 하는데
사망신고 돼있으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내가 나라는 거를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가족을 찾을 방법도 없고." 
-마명철 학무국장

 사망신고를 정정하려면 가정법원에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일단 (연락되는) 가족이 없으면,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고향인 구례까지 내려갔지만, 동주민센터에서는 '사망신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제적등본조차 떼어주지 않았다. 자신이 '신원불명'의 사람이라는 사실부터 확인되어야 했다.
손종식님은 마명철 학무국장과 함께 서울역 파출소를 찾아가 십지문 확인을 요청했다. 그마저도 처음엔 거절당했지만, 노숙인 담당 경관인 박아론 경사가 이야기를 듣고 십지문 확인을 도와줬다. 지문이 등록되지 않은 '신원불명'의 사람이라는 경찰 공문이 자신을 증명하는 첫 번째 서류가 됐다.
 공문을 들고 남대문 경찰서를 찾아 '가족찾기' 신청을 했지만, 전쟁이나 해외입양 등의 사유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또 다시 거절당했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손종식님은 '옛날처럼 막히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회현동주민센터에서 경찰 공문을 보고 사유를 인정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위한 임시 사회보장번호를 발급해주고, 제적등본을 열람하게 해주었다. 자신이 사망신고되었다는 공식 서류를 36년만에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시서기센터에서 대학생 때부터 자원활동을 한 박기태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할 서류 작성을 도왔다. 다시서기센터의 사회복지사 2명이 '손종식님이 손종식님이 맞다'는 인우보증서를 작성했다.  법원에서는 가족의 인우보증서와 유전자검사 확인서 등 '손종식님이 손종식님임을' 증명할 자료를 보완하라고 명령했다.법원의 명령문이 있으니 드디어 동생들의 초본을 열람할 수 있었다. 주소가 있었지만, 연락처는 알 수 없었다.
 마명철 학무국장은 동생분이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했다. 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17년 전에 마지막으로 수소문해 만났던 여동생이었다. 당시엔 동생들도 형편이 어려워 손종식님을 돕지 못했다. 서로를 향해 참았던 그리움과 속상함이 교차했다. 동생들은 인우보증서를 작성했고, 유전자검사를 받았다. 손종식님은 그동안 자활근로를 해 모아두었던 돈으로 유전자검사비와 서류 비용을 부담했다.

내 인생의 마중물
 지난 2021년 2월 15일, 그는 법원으로부터 '사망사유 말소' 판결을 받았다. 3월 10일엔 동주민센터에서 지문을 등록하고 임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그다음날인 3월 11일, 성프란시스대학 16기로 졸업식을 마쳤다.

"나한테 인문학은 천군만마예요모든 걸 다 이루어줬잖아요.
이때까지 내 평생의 소원을 이루어준 게 인문학이라,
 평생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남들은 1~2년씩 걸린다는 사망신고 복원을 그는 10개월만에 끝마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 모든 일이 그가 서울역에 온 지 15년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왜 더 앞당겨지지 못했을까? 성프란시스대학의 학무국장인 마명철 사회복지사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이전에 현장지원팀에 있을 때는 거리 응급구호활동,
응급 보호 후에 시설이나 병원에 연계하는 일들을 주로 했어요.
단기간에 많은 사람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성프란시스대학에서는 이렇게 1년이란 과정 동안
  한 사람한 사람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걸 판단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고 충분히 계속 만나면서
그런 과정들을 지속한다는 게요."

 성프란시스대학엔 매년 15명이 입학한다(원래는 25명이었지만 작년부터 대기업 후원이 끊겨 공간 문제로 입학정원이 줄었다) 글쓰기, 철학, 예술사, 문학, 역사 과목을 1, 2학기로 나눠 듣는다. 중간중간 소풍도 가고 현장답사도 간다. 당장 수백 명의 거리 홈리스를 상담하고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15명을 위한 인문학과정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인간의 삶은 '효율적인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 바뀔 수 있는 것 아닐까? 손종식님은 16기 졸업문집 '마중물'(손종식님의 아래 글에서 제목을 따왔다)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 1년 인문학을 만나 참으로 새롭고 신기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저를 돌아보고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인문학을 마주했던 그 마음으로 생활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도움주신 교수님들, 마국장님 고맙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난 1년은 내 인생의 마중물의 시간입니다. 근본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줄을 더할 차례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 살아있는 손종식입니다.“
 
가슴 따뜻한 다시서기 활동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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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안 간다며, 왜 다시 돌아갈려고?"

 6개월간 짧은 일탈을 끝내고 다시 노숙인 복지시설로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 지인들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항상 노숙인 시설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위험하지 않으세요?", "다른 복지 분야도 많은데 왜 하필 노숙인이에요?"라는 질문들을 듣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저 자신에게 물음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게 왜 나는 여기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신념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족과 친구라는 지지체계가 있고 두 발 뻗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 힘들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이분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가장 낮은 취약계층으로 다시 일어나려면 다른 이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옆에서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다”
라고, 그리고 역동적이면서 내가 가장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저는 2020년 8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직원이 되어 서대문구에 위치한 지원주택에서 19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가을날 실무자를 포함한 우리 36명은 낯선 성북, 서대문이라는 지역에 정착하여 SH 지원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입주 첫날 “저녁은 뭐해 드실 거세요”라는 질문에 "창문 열어놓고 냄새 풀풀 풍기면서 삼겹살 구워 먹을 겁니다"라고 이야기 해주신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세상에서 밥과 삼겹살이 가장 좋다는 선생님은 오랜 기간 시설과 고시원 생활로 남의 눈치 때문에 냄새나는 음식은 조리하지 못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날이 많아 입주한 첫날은 집에 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다 보니 지금은 주변에서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살이 부쩍 오르셨습니다.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3가지 요소인 의식주 중 ‘주(住)’ 단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간의 의미 뿐 만 아니라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족쇄처럼 지니고 있는 채무를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을 생기게 하는 도구가 되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취업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니게 하고, 그동안 연락하지 못하였던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용기가 되고, 그 만남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자신의 내향과 외향을 꾸밀 수 있는 여유가 될 수 있음을 선생님을 통하여 여러 의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처음 연고지 없는 낯선 동네, 공동주택 생활 적응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집이 생겼다는 기대감도 잠시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불안감, 2분 거리 슈퍼에 가는 것도 길이 익숙치 않아 길을 잃어버리기도 해보고 처음으로 은행에서 공과금을 내보는 것도, 쓰레기는 모두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것이 아닌 분리수거를 해보는 것도 처음이라 실수도 해보고 정신장애를 지닌 노숙인이라는 낙인으로 주변 이웃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태어나서 처음부터 걸을 수 없듯이 우리 선생님들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배우고 노력하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고 계십니다.

 서대문과 성북이라는 낯선 지역에 함께 정착하게 된 31명은 노숙인에서 어엿한 지역사회 주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의 방식대로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입주 후 6개월이 지났으나 입주일과 코로나 시기가 겹쳐 집합과 외부 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답답함을 호소하며 함께 나가서 좋은 음식, 멋진 풍경을 구경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하십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마스크를 벗고 꽃놀이를 갈 수 있는 그 날을 기원해 봅니다. 
시서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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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길벗의 퇴역!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마음이 동하는 경우가 참 많죠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그 사이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채워나가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가끔씩은 당시의 상황그리고 공간느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망지원센터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단 둘이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그 대표적인 공간이 이송차량 안이 아닐까 싶네요조치를 위해 거리선생님을 모시고 이동하는 시간동안 둘만 이 차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이동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비밀이 많은 공간으로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간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거리노숙인들의 긴급 이송 업무를 책임져주었던 스타렉스 차량 2대가 임무를 다하고 3월 26일에 퇴역하였습니다.
본 차량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직원이라면 누구나가 함께 했던 차량으로 병원동행업무시설입소업무긴급응급이송업무 등을 함께 해 왔습니다.
새로운 차량이 배정될 예정이고 새로운 차량의 시동이 켜지는 순간 퇴역한 차량이 잊혀 질 수 있겠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퇴역차량안의 이야기는 계속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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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지원센터에서 종합지원센터로!
3월에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몇몇 종사자들의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한날한시에 입사한 박상준임종혁 사회복지사는 입사일 2016년 6월 13일부터 2021년 3월 26일까지 약 4년 9개월간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함께 근무를 하다가인사이동 과정을 통해 3월 29일 종합지원센터 운영지원팀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서 일을 시작하는 만큼 잘 적응하고변함없는 열정을 가지고 거리 선생님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기를 응원해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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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소중한 후원물품
3월에도 코로나19 확산방지에 대한 염려와 도움을 주기 위하여 많은 후원자 분들이 후원물품을 보내주셨습니다개인 후원자 중 아이의 천일을 기념하여 노숙인에게 백설기 떡을 나눠주고 싶다고 하여 무료급식소현장센터이용인 들에게 잘 전달하였습니다디모데팀에서는 꾸준히 간식과 마스크를 포장하여 보내주시고 있습니다이외에도 개인 및 단체 후원자들이 햄버거견과류손소독제캐논프린터의류 등을 후원해주셨습니다.
항상 소중한 후원물품 필요한 대상자 분께 잘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 💨
Thanks to...
3월 후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후원금 7,400,300원
- 후원물품 38건
3월 봉사,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개인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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